광고설정


AD HERE
이곳은 항상 최상단에 위치하는 배너 자리 입니다.

광고설정


AD HERE

광고설정


AD HERE

광고설정


AD HERE
메뉴 하단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배너 자리 입니다.

광고설정


AD HERE
칼럼
  •  인생의 아웃풋과 인풋주오대학교 법학부 교수리키마루 사치코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언어를 사용할 때에는 자신의 사고나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상대방이 존재하는 정보 전달 행위이다. 전달에 관해서는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오랫동안 정보의 제공자와 수령자인 양극화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SNS의 발달로 누구나 발신자가 될 수 있게 되었고,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자신을 노출하고 정보를 받는 사람과 소통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즉, 미디어의 발달에 의해 잃은 정보 발신의 힘을, 우리는 자신의 손 안으로 되찾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힘을 우리는 어떻게 행사해 나가야 할까? 전한다는 행동에 관해서는 SNS상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전하는 목적과 상대방을 고려하는 동시에, 그 내용 자체를 충실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발신되는 정보가 정보 수령자에게 유익하고 양질의 정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유튜브 수익화가 예전보다 안 되는 이유도 바로 이 점을 뒷받침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유튜버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되고 싶은 직업으로 상위권에 올라 있다. 하지만 틱톡 등 유사한 플랫폼이 많이 출현해온 바람에 정보를 받는 사람들도 그냥 재미있는 내용이 아니라 전문성이 높은 내용 등 제공되는 정보에 예전보다 높은 수준을 요구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럼 제공하는 정보가 받는 사람에게 유익해야 한다고 하면 우리가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충분한 지식을 얻는 일만에 집중해야 할 것인가?   3년전에 나는 아웃풋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나는 외국어공부를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언어를 배워 왔다. 다만 그렇게 공부한 외국어들은 대부분은 그냥 지식이었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인생이 끝나면 이 지식도 나와 같이 사라진다. 아무리 외국어공부를 좋아하고 해도 이렇게 사라진다고 하면 내가 열심히 공부했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지 않고 지식만 갖고 있는 나의 모습은 마치 어린 여자아이가 양손 가득 사탕을 안고 “이거, 다 내 거야!" 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그 때 나는 아웃풋을 할 필요를 알게 된 것이다.  일본 작가 쓰카모토 료 씨는 아웃풋의 중요성에 대하여 저서 《행동하는 습관》 안에  "알게 된 정보나 지식을 아웃풋하는 것으로 배움의 질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새로운 배움을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아웃풋을 의식하면 끊임없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하기에 인풋의 질도 높아진다. 다시 말해 인풋은 지식을 확보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아웃풋을 위한 수단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유영만교수도 저서 《언어를 디자인하라》 중에서 독서에 관하여 이와 같이 적어 있다. “독서는 읽기만 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쓰기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쓰기를 목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과 그냥 읽는 사람은 출발부터 다르다... (후략)" 현대사회에서 정보에는 큰 가치가 있다. 아웃풋 목적으로 정보를 수집할 때, 그 행위는 당신을 성장시키고 동시에 당신의 가치를 높인다. 요즘 자주 듣는 말인 셀프 브랜딩과도 관련하는 관념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손안에 되찾은 아웃풋이라는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바로 당신에게 달려 있다. 
  •  우리 인생을 의미 있게 하는 것 ㅡ 김연희  최근 ‘무엇이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가?’(퓨 리서치 센터, 2021년, 미국)라는 주제의 여론 조사 결과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2년 전 자료이지만 그 결과가 흥미로운 것 같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캐나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 호주, 대만, 일본 등 17개국이 조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 질문의 결과를 보기 전에 ‘내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잠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답일지도 모른다.    글로벌 17개국 중에서 14개국은 ‘가족’이 1위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물질적 풍요’ 바로 ‘돈’이었다. 당연하지는 않지만, 가족이지 않을까 미리 짐작한 나에게도 예상 밖의 결과였던 것 같다. 여론 조사 하나로 전체를 평가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변화되어가는 우리의 의식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었다는 것에 나름의 의미를 두고 싶다. 글로벌 1위인 '가족'은 3위로 나왔다고 한다.   조사 결과가 ‘물질적 풍요’이든 ‘가족’이든 결과 자체에 지나친 색안경을 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식이 이렇게 바뀌고 있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여론 조사 결과가 당시 언론에도 보도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만 ‘가족’보다 ‘물질적 풍요’가 앞서는 결과가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한편 이 여론 조사가 아니어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절대불변의 가치일 것 같던 가족이 해체되고, 물질적 풍요를 갈구하는 현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를 희생해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키워내는 것이 당연할 때가 있었다. 그것이 삶의 의미요 행복이었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다. 심심찮게 각종 매체를 통해서 접하게 되는 부모와 자식 간의 다툼, 형제들 간의 불화는 이제 더 놀라울 것도 없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유산과 부모님의 노후문제 등 심각한 갈등의 요소에 돈이 얽혀있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와 자식이, 형제끼리 주먹다짐과 칼부림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가족 해체의 요인 중 하나로 돈이 무관하지 않았던 것처럼, 돈이 우리 삶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 같다. 인스타, 블로그, 유튜브 등 SNS에 접속해 잠시만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월 1000만 원 버는 방법’, ‘월 1억 버는 비법’, ‘따라만 해도 부자가 되는 법’ 등 누구나 성공과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강의와 정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실제로 강의를 신청하고 성공을 꿈꾼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은 성공하고 싶어하고, 부자가 되어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살기를 열망한다.    돈은 가족을 해체하는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우리의 꿈을 실현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두는 것이 돈이라는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다른 의도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내 가족과 좀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돈에 의미를 부여했을 수도, 내 꿈을 위해 성장하고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요한 가치를 두었을 수도 있다.    2년이나 지난 여론 조사를 보며, 나 역시 의외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급변하는 세상에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가족'과 '돈'의 관계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가족과 돈의 균형이 중요할 것이다. 어디 가족뿐이겠는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행복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살아갈 것인가는 자신이 선택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무엇이 되었던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와 예의는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가족에게도 돈에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리와 예의를 잊었기에 가족 간에 다툼이 생기고 돌아올 수 없는 지경까지 가는 것이다. 돈도 마찬가지다. 써야 할 곳에 쓰고, 쓰지 말아야 할 곳에는 지갑을 닫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럼 돈이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인가? 돈도 자기를 귀하게 쓰는 사람에게 온다는 말이 있다. 액수를 떠나 돈을 제대로 쓰는 것, 곧 돈이 내게 오도록 길을 만드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질문을 던져보라.  ‘무엇이 내 인생을 의미 있게 하는가?’ 곧바로 답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인생에서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난 살면서 행복한 기억이 별로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얘기하다 보면, 자신이 살아온 시간 곳곳에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나에게는 언제 꺼내어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기억이 있다. 생각만으로도 여전히 그 시절로 돌아가는 듯해서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가끔 농담처럼 내 독서는 20대에 다 끝난 것 같다고 얘기한다. 그 시기를 지나며 긴 시간 동안 책을 가까이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동네 친구 집을 돌아다니며 책을 빌려 읽었다. 학창시절엔 도서관을 문턱이 닳도록 다녔고, 항상 토요일이면 책을 빌려주는 고마운 친구도 있었다. 전쟁과 평화, 죄와 벌, 제인 에어, 데미안 등 세계 명작이라던 책은 글의 의미와 깊이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월급이 나온 다음 날엔 서점으로 달려갔다. 그 당시 지방의 중소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역을 중심으로 서점이 네 곳 정도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월급으로 읽고 싶은 책을 다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생각해낸 방법이 있다. 서점을 돌며 한 권의 책을 이어서 읽는 것이었다. 궁하면 통한다는 옛말처럼, 한 서점에 오래 있으면 눈치가 보여 나름 머리를 썼던 모양이다. 삼국지, 태백산맥, 토지, 초한지, 손자병법, 논어 등 기억조차 나지 않는 책들에 흠뻑 빠져 살았던 것 같다. 이때는 정말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했었다. 단골 서점의 사장님께서 팔고 남은 과학, 역사의 월간지와 리더스 다이제스트 같은 잡지를 챙겨주셔서 다양한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를 키워낸 열정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면서 몽글몽글 행복이 피어난다. 행복은 지금, 이 시간을 사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에 감사하고 온전히 즐기는 것이다. 나는 행복했던 그 시간을 생각할 때면 과거의 한 시점을 현재로 고스란히 가지고 오는 것처럼 느낌이 생생하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 같다. 그 안에서 열정적인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 이유는 뭘까? 그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든 열정을 쏟아본 경험은 현재의 자신에게 자신감을 부여하고 자존감을 올려준다. 그리고 미래의 목표를 정하고 실천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 글을 읽는 그 누군가도 이런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 기억들이 가슴속에서 잘 자라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좋은 기억으로만 남겨 놓을 수도 있고, 좀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작은 불씨로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말이다.   우리 안의 행복한 기억은 현재의 나를 당당하게 살게 하는 토양이 된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으며 자랐던 일,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나가던 일, 무엇인가 해내던 일들이 난관에 부딪힌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과거의 경험이 오늘의 나를 만든다는 말은 부정적이기도 하고 긍정적이기도 하다. 과거의 주 양육자나 주변에서 들었던 말들이 고정관념과 편견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그 부분보다는 자신이 느꼈던 행복한 경험이 오늘을 사는 데 탄탄한 토대가 되어준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지금 나는 예전에 읽었던 책 중 대부분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난해하기 그지없던 문장들이 내 안에서 싹을 틔워 나의 자아와 정체성을 형성해 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무의미한 시간은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오늘의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불씨로 쓰고 있다. 우리는 모두 행복했던 어느 시간에 기대어 위로받고 용기를 얻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내가 행복할 수 있게 오늘 행복하게 살아야 함을 느낀다. 우리 모두 지금, 이 순간 많이 기뻐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행복의 씨앗  11월 초 토요일에 전철을 타고 바다까지 다녀왔다. 일본 도쿄 중심부에서 6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지가사키(茅ヶ崎)"라는 곳이다.여름이면 그곳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11월이 되면 평소와 같은 일상의 분위기를 되찾고 있다. 나는 바닷가에 있는 카페에서 바다를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깅을 하는 사람, 자전거에 타서 지나가거나 바다까지 왔던 사람, 그리고 강아지를 데리고 바닷가나 내가 있던 카페에 온 손님들도 많았다. 12시 조금 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오후 3시쯤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바닷가에서 편한 마음으로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매일 바쁘게 움직이며 이런 시간의 가치를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 날에 나는 책을 한 권 가져 갔다. 바닷가에서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을까 봐 걱정해서 그랬는데 결국 바다만 보고 있었다. 카페에 그냥 앉아서 바다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이렇게까지 힐링을 받을 줄 몰랐다. 이번에 바다에 가기 전까지 나는 행복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었다.  "행복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을 실천하는 안에 있다"고.  즉 다만 좋은 일이 있을 때 느끼는 기쁜 마음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 철학자 알랭(1868-1951)의 생각이라고 한다. 알랭은 행복에 대한 책을 쓴 근대의 대표적인 철학자 세 명중의 하나인데 그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동을 수반한다고 한 것이다. 힘든 시기를 지나가면서 나에게 큰 힘을 준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번의 바닷가의 경험을 통해 내 머릿속에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겼다. 행복은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냐? 아니면 미리 있는 것이냐? 결국 답은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는 것 같다. 그냥 있어서 행복이라고 느낄 수 있으면 그래도 좋고 노력해서 행복감을 얻을 수 있으면 그것도 좋다.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바라지만 행복감을 느끼는 경우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기에 행복자체를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들은 행복을 원한다.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에게서 감사의 말을 들을 수 있으면 그 말이 우리를 기쁘게 만든다. 우리가 조금 피곤할 때에는 단 케이크나 조용히 흐르는 시간이 우리를 기쁘게 한다.  그런 사소한 것을 통해서도 우리는 확실하게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의 씨앗은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 우리는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단 5분이라도 생활 속에서 멈춰서는 시간을 확보해 보면 어떨까?. 그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스스로 시간을 컨트롤하는 방법이다. 그 기술을 얻으면 우리가 행복의 씨앗을 스스로, 더 쉽게 만들 수도 있다. 행복이 미리 존재하는 것인지의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의 씨앗을 찾아 키우는 것이다. 큰 것을 바라지 않아도 된다.  만약 당신이 오늘 위로의 말을 듣고 싶으시면 그 듣고 싶은 말을 누군가에게 전해 주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 김연희 작가 (치유글약방, 마음에 길을 묻다)  “우리는 어떤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면 그 관계가 실패했다고 여깁니다.” - 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듯한 이 문장을 발견하고, 기뻐해야 할지 씁쓸하다고 해야 할지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며칠 동안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던 이유가 관계, 지속, 실패라는 이 세 낱말 안에 있었다. 그것들이 뒤엉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와 주고받은 문자의 파장 때문이었다. 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면티만 입어도 반짝반짝 빛이 나던 20대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였다. 힘들 때 서로 많이 의지하며 하루가 멀다고 얼굴을 보고 많은 것을 함께하며 살았다. 변화무쌍한 것이 삶이라 친구는 다른 지역으로 결혼을 해서 떠났고 나도 내 삶을 살기에 바빴다. 자연스럽게 연락은 뜸해졌다. 가끔 안부를 물어보는 정도의 문자만 오고 갔다. 그런데 십 년이 넘는 시간을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묻는 것은 항상 나였다.   며칠 전, 별일은 없는지 안부를 묻는 문자를 보냈다. 글에도 감정이 있다. 그래서 ‘조사’ 하나를 두고 씨름하고, 문장을 어떻게 끝낼지를 고민하며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쓴다. 이 글에 나를 고스란히 담았으니, 그 마음 헤아려주길 바라며 쉼표와 마침표 사이를 오간다.   그런데 답이 되어 돌아온 문자는, 과연 이 안에 정이나 반가움이 티끌만큼이라도 있을까 싶을 정도의 단답형이다. 서운함이 울컥 올라온다. 지금껏 나만 우리 관계에 매달려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인연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것 같다’라고 내게 말했었다. 이 순간만큼은 그 말이 믿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실패했다는 생각이 내 안에서 올라왔다. 처음으로 이 관계가 더는 지속되지 못 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너무나 생생하게 들었다. 아쉬움을 넘어 하나의 인연이 이렇게 끝난다는 서글픔은 마치 중요한 경기에서 진 느낌이었다. 긴 시간만큼 상실감도 컸으리라.   그러다 ‘우리는 어떤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면 그 관계가 실패했다고 여긴다’라는 문장을 만난 것이다. 책에서는 관계가 얼마나 오래가는가, 혹은 어떤 식으로 끝나는가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고 한다. 단지 삶의 일부라는 것이다. 더는 관계가 필요치 않을 때, 관계 그 자체는 이미 완성된 것이라고 얘기해 준다.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아 몇 번이고 읽어본다, 지금 내게 이것보다 확실한 위로의 말이 또 있을까?  우리는 인연 혹은 관계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자랑처럼 이야기할 때가 있다. 오래된 시간만큼 관계의 깊이도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내게도 있다면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와 모든 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시간만으로 맺어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시간과 더불어 실제로 우리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지속시키는 힘은 어떤 경험을 얼마나 많이 공유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현재 내 옆에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은 지금의 내 삶에 인접한 사람들이다. 함께한 다양한 시간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이제 옆에 없고,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에 있다. 시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있었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를 괴롭혔던 것은 변해버린 관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었음을 알고 있다. 인연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미련스러움이었다. 이제 그 마음을 내려놓고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글을 쓰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친구와 나의 관계는 성공적이지 않았을까? 끝까지 지속되어야 한다는 고집스러운 생각만 내려놓으면 되는 것이었다. 힘들 때 위로가 되어주고 든든하게 지켜주었던 친구였다는 것만으로 이미 우리는 충분했다. 내가 만약 친구에게 다시 안부를 묻는다면 우리의 인연은 새로운 관계가 될 것이다. 지난 시간이 아닌 현재를 함께하기 위해 나는 다가갈 것이고 그 마음을 알아주리라 믿는다. 어쩌면 글을 잘 쓰는 그 친구의 진심이 담긴 문자를 받을지도 모른다. 설혹 안되더라도 괜찮다.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너를 알고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 그럴 수 있어?’라는 함정에 빠져 있다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길 권한다. 추억은 가끔 먹는 별미일 뿐이다. 함께 오래 하려면 현재를 함께 공유하고 새로운 시간을 쌓아야 한다. 만날 수 없다면 전화를 하고 문자로 소통하는 방법도 있다. 마음만 있으면 우린 뭐든 할 수 있다.  
  •    원한다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오대학교 법학부 교수 리키마루 사치코 고시 공부를 열심히 했던 시기가 있었다.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합격할 수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 하고 싶은 일들을 희생하며 공부를 계속하고 있었다. 3학년 때다. 어학연수로 처음 프랑스에 갔을때다. 연수 기간은 한달, 기대감도 컸지만 동시에 고시 공부를 전혀 못하는 상황은 불안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도 공부하려고  얇은 책을 한 권 가져 갔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나는, 그곳에서 즐겁게 사는 방법을 배웠다. 내가 있던 곳은 여름에 방문객이 많이 찾는 프랑스 남부 도시였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인생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학연수가 끝나기 전, 그 나라에서 최소한 1년을 지나고 싶다는, 프랑스 사람들의 사고 방식,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결국 어학연수 기간에 고시 공부를 하려고 가져간 책은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일본에 돌아오고 다시 고시 공부를 시작했지만,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점점 의문이 커지고 있었다. 어느 날 대학교 복도를 걷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나는 지금 죽을 수 없다.”   고시 공부 때문에 많은 것을 희생했다. 만약 내 목숨이 지금 끝난다면 못한 것이 많아서 도저히 죽을 수도 없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 때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겠다”고 대학교 2학년 무렵, 프랑스어 교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속담도 내 결심의 뒷받침이 됐다.   Vouloir, c'est pouvoir (원한다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20년 넘게 이 속담은 늘 내 곁에 있었다. 나는 좋아하는 프랑스와 공부한 법률을 합쳐 프랑스 가족법을 전공하는 연구자가 되었고, 관심있는 외국어공부를 계속하여 한국어를 비롯한 7개국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긍정심리학이 인기가 있는데 "성공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먼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 그 다음에 그 일을 반드시 해 낼 것이라는 각오와 성공 이미지를 가지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결심하고 나서 원하는 것을 많이 해 왔다. 그래서 지금 후회는 없다. 단 나도 모든 것을 문제 없이 순조롭게 해 왔던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외국어 공부를 좋아하더라도 좀처럼 마음대로 말할 수 없었던 시기도 당연히 있었다. 자신감도 떨어져서 너무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언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원한다는 것은 할 수 있다는 뜻이라는 그 속담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해 낼 수 있을지 의심이 생겼을 때마다 이렇게 믿었다. 어두운 터널에도 출구는 반드시 있다고. 자신이 터널 안에 있을 때에는 출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상황이 계속될 거라는 불안감도 든다.  만약에 자신이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출구가 있더라도 그 당시에는 출구가 보이지 않기에 이 상황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곳에서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다. 어둠을 인식하는 것은 바로 출구가 가까워졌다는 신호이기도 한다.  꿈을 이루는 각오와 성공 이미지,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당신도 반드시 해 낼 수 있다.  원한다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당신에게도 이 말을 전해 드리고 싶다. 
  •   [GNN대구취재본부=정문현기자]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보다 보면 자신에게 좋은 운이 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때가 있다. 또한, 반대로 나쁜 일들이 이어지거나 예견되는 시기가 오기도 한다. 과학적인 근거에 따라 공식화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이마에 깊은 골이 생기고, 머리가 흰색으로 물들여 갈 때면 우리는 오감을 넘어선 감각으로 삶에서 흐르는 운을 감지하기도 한다.  인생이란 무대에 오르면, 누구에게나 조명이 잠시 꺼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굴곡이 있는 인생 여행,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하지만 내리막을 어떻게 경험하고 내면에서 복기하여 승화시키느냐에 따라 다음 찾아올 오르막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기도 하지만, 힘든 시련의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코로나를 겪는 동안, 당신의 운이 애처로울 정도로 좋지 않았다면, 이제서야 삶의 희망을 조금이라도 맛볼 시간이라 여겨진다면 오늘 하루, 깨어있기를 권해본다.  즉 삶을 조용히 조망해보라는 말이다.  좋은 운이 오는 것은 새로운 삶에 문을 여는 신성한 일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몸과 마음은 좋은 운을 맞을 준비를 하여야 한다. 좀 더 쉽게 말해보자면 과거 지저분한 인연과 사고의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새로운 물은 새로운 그릇에 담는다는 말이 있듯이, 과거 당신을 힘들게 하였던 인연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늘 당신의 마음이 깨어있어야 한다.  나에게 기쁨보다 근심을, 격려보다는 근거 없는 걱정만 보내는 주위의 시그널을 차단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 익숙한 관계, 얼룩진 사랑으로 포장되었던 그 시간들 속에서 자신을 방치해두지 않아야 한다.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는,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거라는 헛된 망상에서 자신을 탈출시켜야 한다.  직무유기라는 말이 있다. 회사에서만 쓰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소중한 삶을 가장 아끼고 보호해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하지만 과거의 틀에 묶여 좋은 운을 맞이할 준비를 소홀히 하고 있다면 그건 가장 큰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외롭다고 함부로 만나지 말라, 시간이 있다고 아무 일이나 하지 말라,   성숙과 성장은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시끄러운 상황에서 성장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몸도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좋은 운의 씨앗은 외로움의 토양 위에서 자란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우주의 섭리가 당신에게 좋은 운을 내려준다. 지금 당신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정리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좋은 운을 받을 준비가 된 것이다. 준비 없이 시작된 일은 오래갈 수 없는 법이다.  지금 눈앞에 시작되는 일들이 얼마만큼 성장할지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 새로운 그릇에 새로운 대운을 담을지, 아니면 버려야 하는 냄새나는 인연에 담을지 말이다.  깨어있어라, 그래야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다가오는 운을 볼 수 있다.   
  • [GNN대구취재본부=정문현기자]어떤 사람이 좋으세요? 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요즘 유행하는 MBTI, EDISC와 같은 진단툴을 떠올리며 성격유형을 말할 것인가, 아니면 한 여름밤 꿈 같았던 첫사랑을 떠올려볼 것인가? 사람마다 어떤 생각으로 무슨 말을 할지 참 궁금하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눈이 아름다운 사람’이라 말하고 싶다.한 사람의 눈을 보면 모든 것이 녹아 있다. 과거의 힘들었던 시간들, 그 차가운 시련 속에서 묵묵히 이겨내온 역경이 보이고, 외로움이라는 터널을 지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의 눈동자, 그 안에는 겸손이 숨어져 있다. 그들은 말이 없다. 장황하거나 화려한 명함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다.나는 눈이 아름다운 사람을 가까이하고 싶다.최경규 행복학교장 [GNN=대구]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들은 오늘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어제를 반성으로 돌아보기도 하지만 내일만을 위해 살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성실하다. 삶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촌음(寸陰)을 아끼고 만나는 사람을 가리기도 한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만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곁에 두지 않으려 한다. 마치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이, 주위 환경의 중요성을 알고 삶의 변명이 많은 사람을 항상 경계한다.송나라 주희가 한 말, 일근천하 무난사 (一勤天下 無難事), 마침 이 말을 좋아하는 선배 두 명이 있다. 그들의 나이. 어느새 80이 되었다. 30년의 인연, 같이 늙어간다고 웃으며 막걸리 한잔을 건네는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바로 눈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비록 피부는 늙어가고, 근력은 예전 같지 않다지만, 그들의 눈은 아직도 건강하다. 한마디로 매력적이다.“성실한 사람에게는 절대 하늘이 어려운 숙제를 내리지 않는다”고 풀이하는 그들, 새로운 한 세기를 맞이하려는 그들의 하루일과를 들어보면 언제나 성실하다. 쉼도 있지만 게으르지 않다는 말이다. “선배님의 눈은 정말 아름다우세요” 라고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눈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늘 함께하세요, 그럼 당신도 그렇게 될 겁니다. 눈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삶은 매력적이에요, 하늘이 부를 날이 언제인지 모르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 아니, 후회없이 오늘을 살아야 해요, 배움으로 어제의 무지를 씻어내고, 멀어지는 인연에 미련을 두지 말고, 새로운 인연에 부담을 두지 마세요, 만남으로 인해, 나를 돌아보고 그들에게서 지혜를 구하는 거지요”눈이 아름다운 사람, 그들은 중도를 지키는 사람이다.무엇이라도 좋은 것을 보면 주위를 살피지 못하고 소유하려고만 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발걸음을 때로는 멈출 줄 아는 사람들이다. 비단 물건뿐 아니라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한 발자국 멀리서 관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 너무 뜨겁지 않게 너무 차갑지 않게 사람을 만난다. 사람을 통해 배운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많기에 삶의 철학이 그대로 적용되어 살아가는 듯하다.눈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들의 삶의 결은 당신과 어쩌면 비슷할 것이다. 굳이 소개를 받으려 새로운 모임에 나가지 않더라도 인연의 고리는 그들을 만나게 해 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을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슬기로운 자는 미래를 오늘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 아직 삶에 비가 내리고 있지만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지친 발걸음에 마지막 힘을 보탠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포기하는 순간, 미래도 사라진다는 것을 아는 그들은 오늘을 제대로 살아가는 눈이 아름다운 사람들일 것이다.어느새 따뜻한 봄을 지나고 있다. 내 마음에도 새들이 지저귀고 햇살이 비치고 있다. 바쁘게만 달리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에서 한순간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오늘 한번 가져보자, 그럴 수 있는 당신은 이미 눈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 천미정작가의 사랑스런 아미[천미정 작가(문인화가)]어느부모든 자기자식 귀하지 않을까요특히 장애가 있다면그러나 어릴적에는누구나 다 관심과기대를 합니다장애가있는 자녀를둔부모님들께 이거 하나만큼은 꼭 명심 하시길 바랍니다지금은 장애자녀가 어려서 무엇이든 다 해줄듯 하지만세월 앞에서 절대 변하지않는 부모마음과 지속적인 자녀를향한 사랑과 관심입니다 너무 과하거나 모자람이 오히려 생각이 천천히가는 자녀에게는 해가 될수도 있습니다 요즘 젊은 부모님들은빠른정보와 풍족한교재들로 자칫 잘못하여 장애가 있는 자녀에게 오히려 부담이고 부모들의잣대에 욕심일지도 모릅니다 진정 내 아이가 조금 뒤에 따라오는 생활에서 과연 부모란 벽이 없을때에도 세상밖을 버티고 나갈수 있는지 먼저 생각을하고 준비를해야합니다 우리들도 젊었을때 내 자녀에게 기대도 부려봤고 내 아이가가진 재능도 발휘시켜보려 해보지 않은것은 아닙니다열심히 노력한만큼 실망도 해 봤고 아이를 힘들게 교육도 해보았습니다결국 결론은 장애가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본인이 행복해하는쪽으로 따르게 되었답니다고등학교까지 특수교육이끝나면 결국 더 이상 앞으로나갈수도 나갈길도 없습니다몇몇 그룹홈을 운영한다 교육을 시켜본다 열의가 있는 부모들끼리모여 준비를하여도 장애가 있는자녀는 빠른성장을 하게되고 부모는 점점 쇠약해지고 사회는 우리가 기대한 만큼 손발이 맞아주질 않는겁니다특히 장애 아들을 둔 부모님들은 아들의성장에 따라 어머니가 끝까지 돌볼수가없고 힘도 부족해져 결국귀한자녀와 이별하는것을수없이 봐오며 나 또한언제까지 내 딸과 살아갈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내가 바뀌는것이 아니고몇몇 부모님이 세상을 바꾸는 것도 아니더라구요 결국 나라가 장애에 대한 인식과 제도부터가자리를 잡고 부모들에 사랑과함께 더불어 나가야만이 진정 장애자녀를 잘 돌볼수 있는 사회를 만들수 밖에 없는겁니다있는그대로 내게 주는대로그것이 귀한사랑입니다다운증후군과 심장판막증으로인조천을 달고사는 내 이쁜딸아미엄마로서 느낌을 적어봅니다- 천미정 작가는 문인화가 및 장신구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며, 엉겅퀴 아트마켓을 운영 하고있다.
  • [박신철(독도사랑국민연대)의 독도칼럼]2022년 10월 25일은 대한제국 칙령 제41조 반포일인 '제122주년 독도칙령기념일'이다.현재까지 애국심에 불타는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은 독도의 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10월25일을 독도 기념의날로 추진하는데 매진하고 있다.이 가운데 우리는 어떤 근거로 기념일을 가지며, 그 기념일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할까?  많은 고민들이 있다.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기념일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이 고민 속에 한가지 도움을 받을 일이 있다면 바로 대한민국의 한글날이다.대한민국의 한글날은 한글 반포일을 기념하는 날로 《세종실록》 1446년(세종 28년) 음력 9월 29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한글, 행사를 가졌었다.이후 《훈민정음 해례본》이 1940년에 경북 안동에서 발견되었고 이 책에 정인지가 쓴 서문에 따르면 9월 상순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1446년 9월 상순의 마지막 날인 음력 10월 25일은 너무도 명확하게 일자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제껏 대한민국의 민간단체들은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로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독도의 날'이라는 광범위한 명칭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명칭으로 기념의날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그래서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보다는 '독도칙령반포일'로 기념을 하는 것이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하기 더 명확하다.이에 '독도사랑 국민연대'와 이에 함께하는 독도사랑단체들의 이름으로 매년 10월 25일을 '독도칙령기념의날'로 대한민국의 기념일을 제정할 것을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에 요구하는 바이다.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10월 25일 독도의날을 <독도칙령기념의날>로 제정하라!2022년 10월 25일 독도사랑 국민연대 대표 박신철 
  • 나라꽃 무궁화일제강점기에 한 교육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일본의 국화 “사쿠라는 잠시 만개했다가 금방 지지만” 우리의 국화인 “무궁화는 100여일 동안 꾸준히 피고 또 피는 우리 민족의 꽃이자 민족의 얼이다” 라고 하는 말을 엿들은 자가 일본 관헌에 알려 무궁화 탄압의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은 전국의 무궁화를 베어냈고, 심지어는 베어낸 무궁화를 쌓아놓고 불까지 지르면서 무궁화에 대한 악의적인 험담까지 쏟아냈다고 하니.. 참으로 악랄하고 야만적인 민족이 아닐 수 없다.   그 험담인 즉, 무궁화를 보면 눈병이 나는데 그 무궁화를 보고 3번 침을 뱉으면 낫는다. 이런 꽃은 쓰레기더미나 화장실 주변에 심어라, 진딧물이 많은 꽃이기 때문에 항상 지저분하니 모두 베어내고 그 자리에 사쿠라를 심어라.. 라고, "그랬던 일본에서  우리꽃 무궁화 축제가 열렸다. 사연인즉  2010년 작고한 故(고) 윤병도선생이 당시 17세의 나이로 일본에 건너가 무궁화를 심기 시작하였으며, 사이타마현 고마진자에 있는 자신의 산 한 모퉁이를 밀어서 만든 33만㎡(약 10만평) 부지에 50품종, 10만주를 식재하여 명실공히 세계최대 무궁화동산을 만들어 매년 7월 하순부터 10월 하순까지 입장료를 받으며, 그 축제기간이 끝나면 무료로 개방했다고 한다. 현재는 故(고) 윤병도선생의 미망인 이토 하쓰에씨와 차녀 하세가와 노부에씨가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차분히 계획을 세워 우리나라에서도 일본보다 더 아름답고 큰 규모의 무궁화동산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바야흐로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단순히 심고 가꾸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세계화를 위한 국가 브랜드로 키워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품종의 무궁화를 사회적 공감대와 외국인이 선호하는 품종으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무궁화의 기준형을 시급히 선정하여 국가 문화브랜드로 키워, 국내는 물론 세계로 보급 확대시켜 세계인이 사랑받는 무궁화가 되도록 우리 모두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무궁화는 신라 때부터 나라의 상징이었다 한다. 화심이 붉어서 일편단심이라 하여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했던 꽃 이였으며, 남태평양의 섬들에서 피는 무궁화는 상당히 큰 꽃이어서 외국 관광객이 올 때 목에 걸어주는 환영의 화환으로 사용하고 있어 세계 어디를 가던 무궁화를 볼 수 있는 글로벌 꽃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할 때다.  따라서 "(사)한국산림환경운동본부"에서는 "한국에 세계최대의 무궁화 자연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유관 기관 및 관련단체 등 다양하게 협의체를 구성하여 차제에 진해 벚꽃(사쿠라)축제가 아닌 “대한민국 무궁화 축제”를 주최하여 국민계몽 및 국가 브랜드로 키워 나갈 수 있도록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무궁화 테마파크, 수목원, 박물관 등과 관람공간 및 체험공간, 스토리텔링을 조성함으로 인하여 "무궁화라는 브랜드 가치"를 높여 한국하면 자연스럽게 무궁화 자연공원을 떠 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함은 물론, 관광자원으로서의 한 축도 담당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사)한국산림환경운동본부 중앙회한국미세만지환경예방협회 중앙회              회  장    이    재    희
  • 나라꽃 무궁화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꽃이며 한국의 국화다. 국화는 그 나라의 국민성을 상징하는 특성을 지니고 또한 그 나라의 역사에 특수한 연관성이 있는 경우와 중요한 전설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 우리 국화 무궁화도 법으로 정해진 나라의 꽃이다. 지금으로부터 80여년 전 우리나라에도 신문화가 들어옴에 따라 서양인들의 왕래가 빈번하게 되어 그 당시 선각자였던 윤치호씨 등의 발기로 양악대가 조직되어 애국가를 창작하고 애국가의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을 넣음으로 무궁화는 조선의 국화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남궁억선생이 한말 경북 칠곡부사로 있을 때 윤치호씨와 상의한 후에 국화로 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두 가지 기록 등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꽃으로 민족의 얼을 상징하게 되었고 “무궁화 강산”이라고 하면 우리나라를 미칭하는 뜻이 되었다.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는 나라를 상징하는 꽃뿐만 아니라“영원히 피고 또 피어 지지 않는 꽃”으로서 7월 초순에서 10월 하순까지 100여일을 매일 꽃을 피워 보통 한 그루에 2천∼3천여 송이가 피며, 옮겨 심거나 꺾꽂이를 해도 잘 자라고 공해에도 강한 특성을 지녀 민족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을 잘 나타내 준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함께해 온 무궁화는 조선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노래 말이 애국가에 삽입된 이후 더욱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무궁화 사랑은 일제강점기에도 계속 되어 1948년 8월 15일 나라꽃으로 자리 잡았다. 그 후 국기봉과 나라문장, 정부 각종문양, 열차, 인공위성 등에 무을 정부 보급품종으로 지정했다. 2002월드컵을 계기로 무궁화축제 개최 등으로 무궁화문양과 이름을 사용해 오고 있다. 88서울올림픽 때는 무궁화동산과 거리조성, 90년 9월 꽃잎 중앙에 붉은 꽃 심이 있는 단심계 홑꽃이 조성되어 2007년에는“8월 8일을 무궁화의 날을 정했다.”우리는 민족과 함께 영광과 수난을 같이해 온 무궁화를 사랑하고 잘 가꾸어 그 고귀한 정신을 길이 선양해야 한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무궁화동산을 늘려 가꾸고 보호해야 함에도 점점 그 수가 줄고 있는 실정이라 안타깝기 그지없다. 마침 산림청에서도 국유지에 예산을 투입하여 무궁화동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무궁화동산의 전국 확대 조성과 무궁화의 올바른 관리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지속적으로 협력하여 추진할 계획이라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산림청과 협약을 맺어 (사)한국산림환경운동본부 중앙회와 전국 16개 협의회가 주축이 되어 무궁화동산을 조성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학생들에게는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의 정신과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시민들에게는 힐링과 나들이 장소로 각광받을 수 있는 명소로 만든다면 시민의 행복은 물론이고 산림문화 또는 산림서비스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무궁화동산 조성은 단순한 나무심기가 아니라 국화로서 그 의미를 되살리고 나아가 산림청과 (사)한국산림환경운동본부와 협업으로 사회적 공헌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무궁화를 국가문화브랜드로 키우고 국가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문화적 요소로서“무궁화동산을 마련하여 관광자원화 함으로써 가족 ‧ 연인 ‧ 친구·관광객 등이 보다 아름답고 추억에 남는 무궁화동산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 한국산림환경운동본부 중앙회 한국미세먼지환경예방협회 중앙회             회  장   이     재     희
  • 아프리카 지도 1979년 3월 우리나라를 방문한바 있는 레오폴드 셍고르 대통령은 1960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아프리카의 신생독립국 세네갈을 이끌어온 지도자다. 파리의 소로본대학교 출신의 셍고르는 바깥에서는 시인으로 더 많이 알려진 아프리카의 지성인이기도 하다. 셍고르 대통령이 1980년 말로 대통령을 사임하고 당시 수상인 압두디 후프에게 대통령을 넘겨주고 은퇴하겠다고 해서 검은 대륙에 잔잔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지금까지 아프리카 신생독립국가 원수  중 자발적으로 자기가 물러난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셍고르의 하야 결정은 모든 사람이 좋게만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야당인 민주당 지도자 와드 변호사는 셍고르가 외체에 허덕이고 있고 자신의 지도자 자질이 한계점에 달했기 때문에, 스스로 정치를 포기하는것은 마치 침몰하는 배를 수수방관하는 것이라고 비난을 했다. 당시 아프리카에서는 51개의 독립국이 있었다. 이 중 48개국이 신생 독립국이였다. 또 25개국 이상이 한차례 쿠데타를 결험했고, 80년 12월 초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인 오트볼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라머지나 대통령이 물러나고 제르보 대톨령이 이끄는 혁명정부가 들어섯다. 후진국 일수록 유혈 쿠데타가 잣다는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뭏턴 당시 시인대통령 셍고르의 자진하야 결정은 검은 대륙의 어두운 정치에 처음으로 비친 한줄기의 희망으로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광고설정


AD HERE

광고설정


AD HERE
이곳은 모든 서브 메뉴의 하단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배너 자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