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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독도는 대한민국 정신이자 혼이다일본은 이제 그만 독도 침탈 야욕을 중단하고, 좋은 이웃 국가이자 경제협력 동반자로 함께 나아갔으면 합니다.독도는 분명한 대한민국 영토이며, 국제법적으로도 대한민국 주권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 1900년 10월 대한제국은 칙령 제41호를 통해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울릉 전도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독도)를 관할한다.’고 공포하여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전 세계에 천명하였습니다. 그리고 1946년 1월 연합국 최고 사령관 각서(SCAPIN) 제677호에 따라 독도가 통치 및 행정상 일본으로부터 완전하게 분리되었습니다. 또한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이러한 연합국의 입장을 재확인하였습니다.따라서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가 분명하고, 국제사회에서도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고 있는 곳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독도는 일본이 그 어떤 도발을 감행하여도 일본의 영토가 아닌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의 소중한 영토입니다.독도사랑 국민연대 박신철 대표외 회원 일동
  •  말, 어떻게 할 것인가? --김 연 희  “말을 이쁘게 해서 참 부러웠어요.”  개인적으로 연락할 일이 거의 없었던 지인과 몇 년 만에 통화를 할 일이 있었다. 인사치레의 말일 수도 있겠지만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지인에게는 말을 이쁘게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을까? 귀에 거슬리지 않는 말투에, 사용한 어휘가 부드럽고 거부감 없이 다가갔던 걸까? 아니면 말의 의미가 듣는 사람에게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 전달된다는 뜻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등 우리 속담에도 말에 관련한 것들이 많다. 말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다. 나의 말 습관이 어떤지 생각해 볼 때가 있다. 혹시 무심코 내뱉은 내 말에 상처 입은 사람이 있는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때론 말이 주는 상처가 칼에 베인 것보다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과 대화할 때 조심하고 싶은 것이 생겼던 것 같다. 많은 실수를 통해서 얻은 작은 깨달음 같은 것이라고 하고싶다.   먼저,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려고 한다. 부정적인 대화의 결론은 늘 비관적이거나 누군가를 비판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어디에선가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한다고 생각해 보면,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누군가의 뒷얘기를 듣는 것도, 하는 것도 즐기지 않는 것 같다. 말은 돌고 돌아 다시 내게 돌아온다고 한다. 내가 먼저 좋은 말을 보낸다면 좋은 말이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내 생각에 사로잡혀 편향된 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 살피게 된다. 너무 내 주장만 하는 것은 아닌지 상대방의 말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하지는 않는지 헤아려보게 되는 것이다. 하루하루 인생의 경험치가 쌓이면서 좋은 것은 나와 다른 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김을 느낄 때이다. 그런 마음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세상의 많은 일은 옳고 그른 것의 경계가 무의미함을 느낀다. 옳고 그름의 판단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라 내게 득이 되면 옳고 실이 되면 틀렸다고 생각한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지혜의 말하기를 염두에 둔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며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간혹 내게 바로 오지 못하고 핵심을 돌고 돌아 어렵게 먼 길을 돌아오는 말이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삼키고 있는 그 말에 물꼬를 터주어야 한다. 정작 알아봐 주어야 하는 것은 숨은 그 마음이니까 말이다.   예전부터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있다. “말 곱게 해서 손해날 일 없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말에 대한 개념을 처음 내게 심어준 사람은 어머니셨다. 이미 말의 힘을 간파하고 그 지혜를 자식에게 전수해 주고 계셨다.   과연 말하기의 고수들은 그들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걸까 궁금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모르고, 그들만 알고 있는 말하기 비법이 있다기보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방법들을, 적절히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차이를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기, 편향되지 않기, 그리고 경청과 공감하기도 조금씩 표현이 다르긴 해도 이미 많은 사람이 실천하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말의 진정한 의미는 진심을 전달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말하기 기술 중 몇 가지만이라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한다면, 말 때문에 오는 오해는 줄이고 이해와 신뢰는 쌓으며 진심을 전달하는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  “여보세요. 빈 방이 있나요?”  주오대학교 법학부 교수리키마루 사치코  약 8년전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어린이용 성경 그림책을 구입했다.신약성경에 요셉과 마리아가 머물 곳을 찾아 빈 방이 있는지 묻는 장면이 있다. 크리스마스 이야기로 유명한 부분이다.오늘 제목은 그 때 요셉이 하는 대사다. 구입한 그림책에는 부록으로 CD가 있었다. 내가 자주 그 이야기를 듣고 있어서 그런지 이 말은 왠지 모르게 집안에서 유행어가 되었다. 지금도 가족 중 누군가 문득 그 말을 입에 담을 때가 있을 정도다.그런 뜻으로 이 대사는 개인적으로 추억이 많은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한 가지 물음이 떠올랐다.  “지금 당신 마음에는 빈 방이 있을까?” 이 빈 방이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의 여유라는 뜻이다. 요셉과 마리아에게는 묵을 곳이 없었다. 그것은 출신지로 돌아가 등록을 하라고 하는 왕의 명령 탓에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왕의 명령처럼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 사정, 즉 타인이 주는 불안감과 스트레스로 인해 지금 당신은 마음의 여유를 잃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마음에 불안감이나 스트레스라는 이름의 손님이 있어도, 만약 그 손님이 마음에 오래 머무는 존재였다고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성경 이야기는 더 계속된다. 요셉과 마리아는 결국 마구간에 묵게 되고 그곳에서 예수가 탄생했다.여관에 빈 방은 없어도 마구간이라는 대안이 제시되었고, 거기서 새로운 목숨이 생겨난 것이다.  “당신 마음이여, 여보세요, 빈 방이 있나요?” 만약 지금 마음의 여유가 없더라도 해결책은 꼭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상황에 당황하지 마시고 당신이 평상심을 유지하며 매일 살아가시길 바란다.  조금 이르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  깃발 여행과 자유여행/ 인생의 깃발 여행과 자유여행/ 당신이 원하는 삶 주오대학교 법학부 교수리키마루 사치코  연말연시에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최근 들어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지난 몇 년동안 여행도 못갔기에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많다. 해외여행이라고 하면 깃발 여행을 소재로 김미경 강사가 한 강연이 먼저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60대 여성 둘이 깃발 여행이 아니라 자유여행을 하려고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배운 뒤 실제로 여행을 떠났지만 여행은 쉽지 않았다.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면 주문한 것과 다른 음식이 나왔을 때도 많았다. 그러므로 주문한 음식이 제대로 나왔을 때 둘이서 부둥켜안고 엉엉 울고 말았다. 그들은 여행을 마친 뒤 다음에는 사진을 배우기로 결심했고, 그 다음 여행을 다녀온 뒤에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언제든지 공부를 시작할 수 있고, 하나 시작하면 그 뒤에 또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메시지였다. 이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김미경강사가 주재하는 스피치 강좌를 수강했을 때의 연습 과제였던 것, 그리고 이 과제로 인해 내가 깃발 여행이라는 말을 배웠기 때문이다. 깃발 여행은 쉽게 참여할 수 있고 외국어를 못해도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다. 직접 비행기나 전철 등을 예약할 필요도 없고, 일반적으로 자유여행보다 저렴하게 더 많은 관광지를 효율적으로 방문할 수도 있다.  반면에 단점도 있다. 면세점 등 우리가 가기 싫어도 끌려갈 수 있는 곳도 있다. 가고 싶은 곳에 데려다 주는 경우에도 방문 시간의 제한이 자주 있다. 관광명소를 둘러볼 때, 목적지는 기억에 남지만 그곳에 가는 길은 기억에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해외여행이 익숙하지 않을 때는 깃발 여행이 참여하기 쉽다. 하지만 여행에 익숙해지거나 깃발 여행에 불편한 부분이 많아지면 우리는 자유여행을 선택하게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남의 의견만 듣고 행동하면 생각없이 걷기만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아직 인생 경험도 적을 때는 가이드가 달린 깃발 여행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깃발 여행에서는 방문한 관광지에 가는 과정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듯이 인생에서 늘 깃발 여행을 한다면 땅에 정확히 서 있지 않는 느낌이 든다. 그 이후에는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들 것이다. 이 길은 정말 내가 걸어가고 싶은 길인가?인생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젊은 사람만이 아니다. 퇴직을 앞두고 제2의 인생을 생각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최근 《50에 읽는 논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저자 최종엽작가는 50대 때 제2의 인생을 강사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 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는 말한다. ‘50대의 공부엔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또 이미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고 한다. 물론 눈치를 보고 결과적으로 전과 같은 자리에 머문다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걱정 할 필요도 없고 비난을 받을 것도 당연히 없다. 다만 후회는 남을 것이다. 용기를 내지 않고 나머지 삶을 후회하며 살 것인지, 혹은 용기를 내어 자유여행을 떠날 것인지, 결정은 각자에게 달려 있다. 당신의 인생은 깃발 여행인가요? 자유여행인가요? 
  •  노래가 위로가 되는 순간  ㅡ김연희당신은 노래가 주는 위로와 응원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뜨거웠던 지난여름 잠깐이지만 슬럼프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의욕도 더위를 먹은 것처럼 기를 펴지 못했다. 한껏 위축된 나에게 "괜찮아."라고 얘기해 주었던 노래가 배카인의 <가애(假哀)>이다.   /다른 사람 먼발치 너머까지 떠나가고/나 홀로 제자리에 남았다고 생각할 때/막상 뒤돌아보니 나/생각보다 많이 걸어온 것 같네/ -배카인 가애(假哀)  이름부터 생소할 수 있는 가수 배카인은 작곡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데, 재치 있는 가사와 시원한 가창력에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 좋아한다. 마치 내 마음을 읽고 있는 것 같아 <가애(假哀)>라는 노래에 끌렸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한여름의 열기만큼이나 뜨거운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럴 때가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열심히 살았는데, 이룬 게 뭐가 있지?’하는 순간 말이다.   나는 제자리걸음 중인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거침없이 내달려 성과를 내는 듯했다. 노래 가사처럼 ‘나 홀로 제자리에 남았다’라는 생각에 마음은 점점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과정보다는 결과로 나를 증명해야 하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성장과 결과를 내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몇 달이면 충분하고, 누군가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항상 느린 편에 속했던 것 같다. 그러니 내 옆을 쌩하고 달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조급함이 습관처럼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다 우연히 한 편의 글을 읽고 초조한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성장은 직선이 아닌 계단을 오르듯이 한 걸음씩 올라가는 것이라고 했다. 계단과 계단 사이에는 서로를 연결하는 수평 구간과 단을 높이는 수직 구간이 있다. 수평과 수직을 성장의 과정으로 설명해 보자. 수직 구간을 딛고 다음 계단에 올라선다는 것은 레벨 업이 되는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울 때 한동안 실력이 늘지 않아 힘들어할 때가 있다. 그때가 수평 구간을 지나는 중이며 정체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 조지 레너드는 저서 <마스터리>에서 뭔가를 이루기 위해 열중하다 보면 정체기가 온다고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실천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새로운 단계로 들어선 자신을 발견한다.” 밥 프록터의 <부의 확신>  내 길이 아닌가 싶어 그만두는 때도 이 시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때야말로 진정한 내 실력이 쌓이고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은 없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 같아도 어제의 나와는 다르다. 어제에서 배우고 깨달은 오늘의 내가 있을 뿐이다. 묵묵히 걸어가는 한 걸음의 힘은 어느 날 우리에게 도약의 기회를 줄 것이다.    지금도 가끔 ‘난 제대로 가고 있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어본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그때의 질문이, 나에 대한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나에 대한 긍정의 확신으로 물어보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대단한 결과를 내고 있어서가 아니다.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성장이 멈추지 않을 것을 알기에 두렵지 않은 것이다.   이제 올해도 20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12월이 되면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보게 된다. 연초에 세웠던 목표에 좀 못 미치면 어떤가. 나를 너무 다그치지 말자. 분명히 우리는 성장해 있을 것이니 내가 나를 인정하고 응원해 주는 12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 리키마루 사치코 교수 시작이 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무엇인가?ㅡ주오대학교 법학부 교수     리키마루 사치코 “시작이 반이다”이 말은 누구나 들어 보았을 법한 유명한 속담이다.  시작이 어려워 보일지라도 일단 시작하면 끝마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말로 어려운 점은 시작이 아니다. 계속하는 것이 더 어렵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이미 습관화된 행동이 뇌 안에 기억되기 때문이다. 새롭게 해야 하는 일은 바로 이 기억된 정보를 바꾸는 것이다.  최근 발전되고 있는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새로운 일을 습관화 하려고 할 때 먼저 새로운 행동이 신호로 전달 된다고 한다. 그런 행동이 반복되면 새로운 신경전달 회로망이 생긴다. 반복하면 할수록 그 회로는 강화된다. 또 실현되는 과정에서 쾌감(보상)을 느낄 때도 이 회로망이 강화된다.  그런 반복과 보상을 통해 점차 의지력을 많이 쓰지 않아도 실행할 수 있게 된다. 즉 습관화된다는 것이다. 또한 확보된 습관은 뇌의 기억 영역에 저장되어 비슷한 상황에서 재현된다. 지금까지 습관화에 대해서는 실현하려는 노력, 즉 의지력의 문제라고 인식 되어왔다. 알고 있듯이 아무리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스스로의 의지력만으로 계속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고 할 때 원하는 모습은 보통 예전의 나의 습관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습관을 얻으려고 할 때 큰 변화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도달점은 멀다. 그래서 잘 안 된다. 습관 만들기 꿀팁으로 조금씩 목표에 다가가는 방법이 자주 제시되는 이유는 바로 그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답답하지만 자신의 루틴을 이용하며 회로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의지력보다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 스스로를 두는 방식 (Benjamin P. Hardy, 《Willpower doesn't work》) 도 반복을 확보하기 위해 유용하다.《수도자처럼 생각하기》의 저자, 제이 셰티 씨는 일정한 장소와 시간대에 계속하면 쉽게 습관화된다고 한다. 이 방법은 환경을 이용하는 방법과 공통점이 있다. 또한 목표치를 낮게 설정하는 방법도 회로를 만들기 위해 유익한 방법이다. 그냥 책을 여는 것만을, 혹은 짧은 시간만 공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통 그런 행위를 하면 그 뒤의 행동도 한다. 작은 목표라면 쉽게 성공할 수 있다. 성공했다는 감정은 자기긍정감을 가져온다. 이런 보상을 활용하면 반복이 확보된다.  게다가 행동을 가속화하는 이점을 이해하는 것도 계속하기에 도움이 된다. 보상과도 공통되는 부분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나는 독서를 좋아하는 반면에 밖에서 운동을 계속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러나 최근의 뇌과학 연구 결과를 알게 되고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 결과에 따르면 공부를 하기 전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설명하는 사람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음)의 유산소운동을 주 3회정도 한다면 그 후에 하는 학습의 능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긍정심리학 전문가인 앤서니 로빈스 씨도 저서 《Unlimited Power》에서 최고 수준까지 몸을 쓰면 뇌도 더 효과적으로 움직인다고 밝혔다. 앞서 설명했듯이 일단 습관화되면 그 방법은 뇌의 기억에 관련된 영역에 기억되어 유사한 상황에서 재현된다. 이 재현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하여 다이어 박사가 저서 《인생의 태도》 안에서 한계를 뛰어넘는 인간에 관해 제시하는 방법이 흥미롭다.  박사는 인간을 1) 많은 아픔과 스트레스를 가지고 사는 사람, 2) 그 사람보다 아픔은 적지만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아직 완전히 열리지 않는 사람, 3) 한계가 없는 사람이라는 세 유형으로 나눈다. 그리고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인간은 목표를 가졌을 때 다만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to want)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능력을 갖추고 있는(to be) 사람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라는 역산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이미 신경전달 회로망이 완성된 사람으로서 실천한다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뇌에 방법을 기억시키는 회로망 만들기다. 
  • 장정희작 꿈꾸는 나무 사랑을 위한 변명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형을 선고합니다.”  등장인물의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는 것이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며칠 전,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으며 그 매력과 사랑에 빠져서 하루를 보냈다. 어느 작가의 책에 인용된 글을 읽고,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궁금해졌다. 어떤 상황이었길래 저런 멋진 문장으로 표현했는지 알고 싶었다. 아직 책 때문에 두근두근 설렐 수 있다니! 꽤 괜찮은 기분이다.  이 글에 꽂혔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당장 사랑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지 않은가? 고독형이라니. 그러나 정작 소설을 읽으며 이 문장은 나에게서 힘을 잃었다. 오래된 연인 폴과 로제의 관계를 설명하는 ’완벽한 안정감과 완전히 익숙해진‘이라는 문장이 훨씬 설득력과 공감이 느껴진다.   소설은 여자주인공 폴과 로제의 오래된 사랑과 폴과 젊은 시몽의 불같은 사랑이 중심을 이룬다. 남자 주인공 로제는 자유로운 성격으로 연인 폴이 있음에도 다른 여성을 만난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폴에게로 돌아온다. 폴 또한 이 상황이 비정상적임을 알면서도 로제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시간에 전화를 기다리고 식사를 하고 새로울 것 없는 연애를 이어가며, 사랑이라고 믿는다. 로제가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졌을 때, 외로운 폴에게 찾아온 젊은 연인 시몽은 폴에게 열정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하지만 폴이 로제를 여전히 원한다는 것을 알고 헤어지게 된다.   서로를 다시 찾은 폴과 로제. 항상 그랬듯이 저녁 8시, 폴의 전화기는 다시 울리고, 그들의 관계가 다시 시작되었음을 알리며 소설은 끝이 난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폴과 로제의 관계가 과연 사랑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연인들은 그 익숙함이 편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에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책으로도 출간된 EBS 프로그램 <세상의 모든 법칙>에서는 오래된 연인들이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를 매물비용오류라는 행동경제학을 들어 설명한다. 지금까지 투자한 돈, 노력, 시간이 아까워서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순수한 감정에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해석이지만, 사람의 행동과 결정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심리적 요인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소설이 계속 이어진다면 저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익숙한 연애를 계속하며, 두 사람 중 누군가가 먼저 ’이제 이만하면 충분해‘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누군가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해주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익숙함과 안정감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원래 남녀 간의 사랑에 이런 속성이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 더 해 주고 싶고, 함께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밟힌다. 못 보면 죽을 것처럼 아픈 것. 사랑이 지나치면 집착처럼 보이고, 집착도 사랑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런 것 때문일 것 같다.  사랑인지 한 번쯤 현실을 직시해 보면 좋을 텐데, 사랑 앞에 이성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사랑은 같이 불타올랐지만, 헤어질 때는 그 온도가 다르다. 그래서 누군가는 항상 처절하게 상처를 입게 된다. 어쩌면 내 패를 다 보이고, 바닥까지 가 보아야 후회가 없이 돌아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폴과 로제의 관계가 사랑이길 바란다. 하지만 소설 곳곳에 폴의 외로움이 드러나고 있어 답답하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했다. 실제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이 사람 사이의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꼭 사랑뿐만이 아니라, 많은 일에 매물비용오류를 범한다. 나 역시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그동안 들어간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미련스럽게 계속하던 일들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실수를 깨닫고 바로 그만두었을 때 입는 손실보다 더 많은 시간이나 경제적인 손해를 보았던 것 같다.  사람의 감정까지 그렇게 계산기 두드리듯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때론 아프지만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완전히 놓아야 할 때가 있다. 비어 있어야 다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놓지도 못하고 잡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는 결국 시간과 감정 소모만 일으킬 뿐이다.   모든 일에는 원하지 않아도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나는 살면서 삶의 진실이라고 느끼는 것이 있다.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사실은 새로운 시작의 순간이라는 진실이다. 생각해 보라. 숱한 순간들이 그랬음을 알 것이다. 지금이 그 순간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씁쓸한 사랑 이야기라 맘이 무거워진다. 모두에게 사랑이 찾아오는 밤이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  인생의 아웃풋과 인풋주오대학교 법학부 교수리키마루 사치코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언어를 사용할 때에는 자신의 사고나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상대방이 존재하는 정보 전달 행위이다. 전달에 관해서는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오랫동안 정보의 제공자와 수령자인 양극화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SNS의 발달로 누구나 발신자가 될 수 있게 되었고,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자신을 노출하고 정보를 받는 사람과 소통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즉, 미디어의 발달에 의해 잃은 정보 발신의 힘을, 우리는 자신의 손 안으로 되찾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힘을 우리는 어떻게 행사해 나가야 할까? 전한다는 행동에 관해서는 SNS상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전하는 목적과 상대방을 고려하는 동시에, 그 내용 자체를 충실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발신되는 정보가 정보 수령자에게 유익하고 양질의 정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유튜브 수익화가 예전보다 안 되는 이유도 바로 이 점을 뒷받침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유튜버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되고 싶은 직업으로 상위권에 올라 있다. 하지만 틱톡 등 유사한 플랫폼이 많이 출현해온 바람에 정보를 받는 사람들도 그냥 재미있는 내용이 아니라 전문성이 높은 내용 등 제공되는 정보에 예전보다 높은 수준을 요구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럼 제공하는 정보가 받는 사람에게 유익해야 한다고 하면 우리가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충분한 지식을 얻는 일만에 집중해야 할 것인가?   3년전에 나는 아웃풋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나는 외국어공부를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언어를 배워 왔다. 다만 그렇게 공부한 외국어들은 대부분은 그냥 지식이었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인생이 끝나면 이 지식도 나와 같이 사라진다. 아무리 외국어공부를 좋아하고 해도 이렇게 사라진다고 하면 내가 열심히 공부했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지 않고 지식만 갖고 있는 나의 모습은 마치 어린 여자아이가 양손 가득 사탕을 안고 “이거, 다 내 거야!" 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그 때 나는 아웃풋을 할 필요를 알게 된 것이다.  일본 작가 쓰카모토 료 씨는 아웃풋의 중요성에 대하여 저서 《행동하는 습관》 안에  "알게 된 정보나 지식을 아웃풋하는 것으로 배움의 질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새로운 배움을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아웃풋을 의식하면 끊임없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하기에 인풋의 질도 높아진다. 다시 말해 인풋은 지식을 확보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아웃풋을 위한 수단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유영만교수도 저서 《언어를 디자인하라》 중에서 독서에 관하여 이와 같이 적어 있다. “독서는 읽기만 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쓰기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쓰기를 목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과 그냥 읽는 사람은 출발부터 다르다... (후략)" 현대사회에서 정보에는 큰 가치가 있다. 아웃풋 목적으로 정보를 수집할 때, 그 행위는 당신을 성장시키고 동시에 당신의 가치를 높인다. 요즘 자주 듣는 말인 셀프 브랜딩과도 관련하는 관념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손안에 되찾은 아웃풋이라는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바로 당신에게 달려 있다. 
  •  우리 인생을 의미 있게 하는 것 ㅡ 김연희  최근 ‘무엇이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가?’(퓨 리서치 센터, 2021년, 미국)라는 주제의 여론 조사 결과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2년 전 자료이지만 그 결과가 흥미로운 것 같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캐나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 호주, 대만, 일본 등 17개국이 조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 질문의 결과를 보기 전에 ‘내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잠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답일지도 모른다.    글로벌 17개국 중에서 14개국은 ‘가족’이 1위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물질적 풍요’ 바로 ‘돈’이었다. 당연하지는 않지만, 가족이지 않을까 미리 짐작한 나에게도 예상 밖의 결과였던 것 같다. 여론 조사 하나로 전체를 평가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변화되어가는 우리의 의식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었다는 것에 나름의 의미를 두고 싶다. 글로벌 1위인 '가족'은 3위로 나왔다고 한다.   조사 결과가 ‘물질적 풍요’이든 ‘가족’이든 결과 자체에 지나친 색안경을 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식이 이렇게 바뀌고 있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여론 조사 결과가 당시 언론에도 보도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만 ‘가족’보다 ‘물질적 풍요’가 앞서는 결과가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한편 이 여론 조사가 아니어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절대불변의 가치일 것 같던 가족이 해체되고, 물질적 풍요를 갈구하는 현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를 희생해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키워내는 것이 당연할 때가 있었다. 그것이 삶의 의미요 행복이었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다. 심심찮게 각종 매체를 통해서 접하게 되는 부모와 자식 간의 다툼, 형제들 간의 불화는 이제 더 놀라울 것도 없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유산과 부모님의 노후문제 등 심각한 갈등의 요소에 돈이 얽혀있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와 자식이, 형제끼리 주먹다짐과 칼부림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가족 해체의 요인 중 하나로 돈이 무관하지 않았던 것처럼, 돈이 우리 삶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 같다. 인스타, 블로그, 유튜브 등 SNS에 접속해 잠시만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월 1000만 원 버는 방법’, ‘월 1억 버는 비법’, ‘따라만 해도 부자가 되는 법’ 등 누구나 성공과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강의와 정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실제로 강의를 신청하고 성공을 꿈꾼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은 성공하고 싶어하고, 부자가 되어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살기를 열망한다.    돈은 가족을 해체하는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우리의 꿈을 실현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두는 것이 돈이라는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다른 의도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내 가족과 좀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돈에 의미를 부여했을 수도, 내 꿈을 위해 성장하고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요한 가치를 두었을 수도 있다.    2년이나 지난 여론 조사를 보며, 나 역시 의외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급변하는 세상에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가족'과 '돈'의 관계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가족과 돈의 균형이 중요할 것이다. 어디 가족뿐이겠는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행복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살아갈 것인가는 자신이 선택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무엇이 되었던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와 예의는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가족에게도 돈에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리와 예의를 잊었기에 가족 간에 다툼이 생기고 돌아올 수 없는 지경까지 가는 것이다. 돈도 마찬가지다. 써야 할 곳에 쓰고, 쓰지 말아야 할 곳에는 지갑을 닫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럼 돈이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인가? 돈도 자기를 귀하게 쓰는 사람에게 온다는 말이 있다. 액수를 떠나 돈을 제대로 쓰는 것, 곧 돈이 내게 오도록 길을 만드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질문을 던져보라.  ‘무엇이 내 인생을 의미 있게 하는가?’ 곧바로 답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인생에서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난 살면서 행복한 기억이 별로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얘기하다 보면, 자신이 살아온 시간 곳곳에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나에게는 언제 꺼내어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기억이 있다. 생각만으로도 여전히 그 시절로 돌아가는 듯해서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가끔 농담처럼 내 독서는 20대에 다 끝난 것 같다고 얘기한다. 그 시기를 지나며 긴 시간 동안 책을 가까이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동네 친구 집을 돌아다니며 책을 빌려 읽었다. 학창시절엔 도서관을 문턱이 닳도록 다녔고, 항상 토요일이면 책을 빌려주는 고마운 친구도 있었다. 전쟁과 평화, 죄와 벌, 제인 에어, 데미안 등 세계 명작이라던 책은 글의 의미와 깊이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월급이 나온 다음 날엔 서점으로 달려갔다. 그 당시 지방의 중소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역을 중심으로 서점이 네 곳 정도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월급으로 읽고 싶은 책을 다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생각해낸 방법이 있다. 서점을 돌며 한 권의 책을 이어서 읽는 것이었다. 궁하면 통한다는 옛말처럼, 한 서점에 오래 있으면 눈치가 보여 나름 머리를 썼던 모양이다. 삼국지, 태백산맥, 토지, 초한지, 손자병법, 논어 등 기억조차 나지 않는 책들에 흠뻑 빠져 살았던 것 같다. 이때는 정말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했었다. 단골 서점의 사장님께서 팔고 남은 과학, 역사의 월간지와 리더스 다이제스트 같은 잡지를 챙겨주셔서 다양한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를 키워낸 열정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면서 몽글몽글 행복이 피어난다. 행복은 지금, 이 시간을 사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에 감사하고 온전히 즐기는 것이다. 나는 행복했던 그 시간을 생각할 때면 과거의 한 시점을 현재로 고스란히 가지고 오는 것처럼 느낌이 생생하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 같다. 그 안에서 열정적인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 이유는 뭘까? 그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든 열정을 쏟아본 경험은 현재의 자신에게 자신감을 부여하고 자존감을 올려준다. 그리고 미래의 목표를 정하고 실천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 글을 읽는 그 누군가도 이런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 기억들이 가슴속에서 잘 자라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좋은 기억으로만 남겨 놓을 수도 있고, 좀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작은 불씨로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말이다.   우리 안의 행복한 기억은 현재의 나를 당당하게 살게 하는 토양이 된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으며 자랐던 일,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나가던 일, 무엇인가 해내던 일들이 난관에 부딪힌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과거의 경험이 오늘의 나를 만든다는 말은 부정적이기도 하고 긍정적이기도 하다. 과거의 주 양육자나 주변에서 들었던 말들이 고정관념과 편견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그 부분보다는 자신이 느꼈던 행복한 경험이 오늘을 사는 데 탄탄한 토대가 되어준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지금 나는 예전에 읽었던 책 중 대부분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난해하기 그지없던 문장들이 내 안에서 싹을 틔워 나의 자아와 정체성을 형성해 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무의미한 시간은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오늘의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불씨로 쓰고 있다. 우리는 모두 행복했던 어느 시간에 기대어 위로받고 용기를 얻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내가 행복할 수 있게 오늘 행복하게 살아야 함을 느낀다. 우리 모두 지금, 이 순간 많이 기뻐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행복의 씨앗  11월 초 토요일에 전철을 타고 바다까지 다녀왔다. 일본 도쿄 중심부에서 6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지가사키(茅ヶ崎)"라는 곳이다.여름이면 그곳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11월이 되면 평소와 같은 일상의 분위기를 되찾고 있다. 나는 바닷가에 있는 카페에서 바다를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깅을 하는 사람, 자전거에 타서 지나가거나 바다까지 왔던 사람, 그리고 강아지를 데리고 바닷가나 내가 있던 카페에 온 손님들도 많았다. 12시 조금 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오후 3시쯤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바닷가에서 편한 마음으로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매일 바쁘게 움직이며 이런 시간의 가치를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 날에 나는 책을 한 권 가져 갔다. 바닷가에서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을까 봐 걱정해서 그랬는데 결국 바다만 보고 있었다. 카페에 그냥 앉아서 바다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이렇게까지 힐링을 받을 줄 몰랐다. 이번에 바다에 가기 전까지 나는 행복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었다.  "행복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을 실천하는 안에 있다"고.  즉 다만 좋은 일이 있을 때 느끼는 기쁜 마음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 철학자 알랭(1868-1951)의 생각이라고 한다. 알랭은 행복에 대한 책을 쓴 근대의 대표적인 철학자 세 명중의 하나인데 그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동을 수반한다고 한 것이다. 힘든 시기를 지나가면서 나에게 큰 힘을 준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번의 바닷가의 경험을 통해 내 머릿속에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겼다. 행복은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냐? 아니면 미리 있는 것이냐? 결국 답은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는 것 같다. 그냥 있어서 행복이라고 느낄 수 있으면 그래도 좋고 노력해서 행복감을 얻을 수 있으면 그것도 좋다.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바라지만 행복감을 느끼는 경우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기에 행복자체를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들은 행복을 원한다.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에게서 감사의 말을 들을 수 있으면 그 말이 우리를 기쁘게 만든다. 우리가 조금 피곤할 때에는 단 케이크나 조용히 흐르는 시간이 우리를 기쁘게 한다.  그런 사소한 것을 통해서도 우리는 확실하게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의 씨앗은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 우리는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단 5분이라도 생활 속에서 멈춰서는 시간을 확보해 보면 어떨까?. 그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스스로 시간을 컨트롤하는 방법이다. 그 기술을 얻으면 우리가 행복의 씨앗을 스스로, 더 쉽게 만들 수도 있다. 행복이 미리 존재하는 것인지의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의 씨앗을 찾아 키우는 것이다. 큰 것을 바라지 않아도 된다.  만약 당신이 오늘 위로의 말을 듣고 싶으시면 그 듣고 싶은 말을 누군가에게 전해 주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 김연희 작가 (치유글약방, 마음에 길을 묻다)  “우리는 어떤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면 그 관계가 실패했다고 여깁니다.” - 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듯한 이 문장을 발견하고, 기뻐해야 할지 씁쓸하다고 해야 할지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며칠 동안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던 이유가 관계, 지속, 실패라는 이 세 낱말 안에 있었다. 그것들이 뒤엉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와 주고받은 문자의 파장 때문이었다. 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면티만 입어도 반짝반짝 빛이 나던 20대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였다. 힘들 때 서로 많이 의지하며 하루가 멀다고 얼굴을 보고 많은 것을 함께하며 살았다. 변화무쌍한 것이 삶이라 친구는 다른 지역으로 결혼을 해서 떠났고 나도 내 삶을 살기에 바빴다. 자연스럽게 연락은 뜸해졌다. 가끔 안부를 물어보는 정도의 문자만 오고 갔다. 그런데 십 년이 넘는 시간을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묻는 것은 항상 나였다.   며칠 전, 별일은 없는지 안부를 묻는 문자를 보냈다. 글에도 감정이 있다. 그래서 ‘조사’ 하나를 두고 씨름하고, 문장을 어떻게 끝낼지를 고민하며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쓴다. 이 글에 나를 고스란히 담았으니, 그 마음 헤아려주길 바라며 쉼표와 마침표 사이를 오간다.   그런데 답이 되어 돌아온 문자는, 과연 이 안에 정이나 반가움이 티끌만큼이라도 있을까 싶을 정도의 단답형이다. 서운함이 울컥 올라온다. 지금껏 나만 우리 관계에 매달려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인연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것 같다’라고 내게 말했었다. 이 순간만큼은 그 말이 믿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실패했다는 생각이 내 안에서 올라왔다. 처음으로 이 관계가 더는 지속되지 못 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너무나 생생하게 들었다. 아쉬움을 넘어 하나의 인연이 이렇게 끝난다는 서글픔은 마치 중요한 경기에서 진 느낌이었다. 긴 시간만큼 상실감도 컸으리라.   그러다 ‘우리는 어떤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면 그 관계가 실패했다고 여긴다’라는 문장을 만난 것이다. 책에서는 관계가 얼마나 오래가는가, 혹은 어떤 식으로 끝나는가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고 한다. 단지 삶의 일부라는 것이다. 더는 관계가 필요치 않을 때, 관계 그 자체는 이미 완성된 것이라고 얘기해 준다.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아 몇 번이고 읽어본다, 지금 내게 이것보다 확실한 위로의 말이 또 있을까?  우리는 인연 혹은 관계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자랑처럼 이야기할 때가 있다. 오래된 시간만큼 관계의 깊이도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내게도 있다면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와 모든 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시간만으로 맺어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시간과 더불어 실제로 우리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지속시키는 힘은 어떤 경험을 얼마나 많이 공유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현재 내 옆에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은 지금의 내 삶에 인접한 사람들이다. 함께한 다양한 시간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이제 옆에 없고,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에 있다. 시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있었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를 괴롭혔던 것은 변해버린 관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었음을 알고 있다. 인연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미련스러움이었다. 이제 그 마음을 내려놓고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글을 쓰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친구와 나의 관계는 성공적이지 않았을까? 끝까지 지속되어야 한다는 고집스러운 생각만 내려놓으면 되는 것이었다. 힘들 때 위로가 되어주고 든든하게 지켜주었던 친구였다는 것만으로 이미 우리는 충분했다. 내가 만약 친구에게 다시 안부를 묻는다면 우리의 인연은 새로운 관계가 될 것이다. 지난 시간이 아닌 현재를 함께하기 위해 나는 다가갈 것이고 그 마음을 알아주리라 믿는다. 어쩌면 글을 잘 쓰는 그 친구의 진심이 담긴 문자를 받을지도 모른다. 설혹 안되더라도 괜찮다.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너를 알고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 그럴 수 있어?’라는 함정에 빠져 있다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길 권한다. 추억은 가끔 먹는 별미일 뿐이다. 함께 오래 하려면 현재를 함께 공유하고 새로운 시간을 쌓아야 한다. 만날 수 없다면 전화를 하고 문자로 소통하는 방법도 있다. 마음만 있으면 우린 뭐든 할 수 있다.  
  •    원한다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오대학교 법학부 교수 리키마루 사치코 고시 공부를 열심히 했던 시기가 있었다.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합격할 수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 하고 싶은 일들을 희생하며 공부를 계속하고 있었다. 3학년 때다. 어학연수로 처음 프랑스에 갔을때다. 연수 기간은 한달, 기대감도 컸지만 동시에 고시 공부를 전혀 못하는 상황은 불안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도 공부하려고  얇은 책을 한 권 가져 갔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나는, 그곳에서 즐겁게 사는 방법을 배웠다. 내가 있던 곳은 여름에 방문객이 많이 찾는 프랑스 남부 도시였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인생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학연수가 끝나기 전, 그 나라에서 최소한 1년을 지나고 싶다는, 프랑스 사람들의 사고 방식,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결국 어학연수 기간에 고시 공부를 하려고 가져간 책은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일본에 돌아오고 다시 고시 공부를 시작했지만,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점점 의문이 커지고 있었다. 어느 날 대학교 복도를 걷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나는 지금 죽을 수 없다.”   고시 공부 때문에 많은 것을 희생했다. 만약 내 목숨이 지금 끝난다면 못한 것이 많아서 도저히 죽을 수도 없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 때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겠다”고 대학교 2학년 무렵, 프랑스어 교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속담도 내 결심의 뒷받침이 됐다.   Vouloir, c'est pouvoir (원한다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20년 넘게 이 속담은 늘 내 곁에 있었다. 나는 좋아하는 프랑스와 공부한 법률을 합쳐 프랑스 가족법을 전공하는 연구자가 되었고, 관심있는 외국어공부를 계속하여 한국어를 비롯한 7개국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긍정심리학이 인기가 있는데 "성공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먼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 그 다음에 그 일을 반드시 해 낼 것이라는 각오와 성공 이미지를 가지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결심하고 나서 원하는 것을 많이 해 왔다. 그래서 지금 후회는 없다. 단 나도 모든 것을 문제 없이 순조롭게 해 왔던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외국어 공부를 좋아하더라도 좀처럼 마음대로 말할 수 없었던 시기도 당연히 있었다. 자신감도 떨어져서 너무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언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원한다는 것은 할 수 있다는 뜻이라는 그 속담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해 낼 수 있을지 의심이 생겼을 때마다 이렇게 믿었다. 어두운 터널에도 출구는 반드시 있다고. 자신이 터널 안에 있을 때에는 출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상황이 계속될 거라는 불안감도 든다.  만약에 자신이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출구가 있더라도 그 당시에는 출구가 보이지 않기에 이 상황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곳에서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다. 어둠을 인식하는 것은 바로 출구가 가까워졌다는 신호이기도 한다.  꿈을 이루는 각오와 성공 이미지,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당신도 반드시 해 낼 수 있다.  원한다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당신에게도 이 말을 전해 드리고 싶다. 
  •   [GNN대구취재본부=정문현기자]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보다 보면 자신에게 좋은 운이 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때가 있다. 또한, 반대로 나쁜 일들이 이어지거나 예견되는 시기가 오기도 한다. 과학적인 근거에 따라 공식화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이마에 깊은 골이 생기고, 머리가 흰색으로 물들여 갈 때면 우리는 오감을 넘어선 감각으로 삶에서 흐르는 운을 감지하기도 한다.  인생이란 무대에 오르면, 누구에게나 조명이 잠시 꺼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굴곡이 있는 인생 여행,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하지만 내리막을 어떻게 경험하고 내면에서 복기하여 승화시키느냐에 따라 다음 찾아올 오르막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기도 하지만, 힘든 시련의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코로나를 겪는 동안, 당신의 운이 애처로울 정도로 좋지 않았다면, 이제서야 삶의 희망을 조금이라도 맛볼 시간이라 여겨진다면 오늘 하루, 깨어있기를 권해본다.  즉 삶을 조용히 조망해보라는 말이다.  좋은 운이 오는 것은 새로운 삶에 문을 여는 신성한 일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몸과 마음은 좋은 운을 맞을 준비를 하여야 한다. 좀 더 쉽게 말해보자면 과거 지저분한 인연과 사고의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새로운 물은 새로운 그릇에 담는다는 말이 있듯이, 과거 당신을 힘들게 하였던 인연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늘 당신의 마음이 깨어있어야 한다.  나에게 기쁨보다 근심을, 격려보다는 근거 없는 걱정만 보내는 주위의 시그널을 차단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 익숙한 관계, 얼룩진 사랑으로 포장되었던 그 시간들 속에서 자신을 방치해두지 않아야 한다.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는,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거라는 헛된 망상에서 자신을 탈출시켜야 한다.  직무유기라는 말이 있다. 회사에서만 쓰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소중한 삶을 가장 아끼고 보호해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하지만 과거의 틀에 묶여 좋은 운을 맞이할 준비를 소홀히 하고 있다면 그건 가장 큰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외롭다고 함부로 만나지 말라, 시간이 있다고 아무 일이나 하지 말라,   성숙과 성장은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시끄러운 상황에서 성장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몸도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좋은 운의 씨앗은 외로움의 토양 위에서 자란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우주의 섭리가 당신에게 좋은 운을 내려준다. 지금 당신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정리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좋은 운을 받을 준비가 된 것이다. 준비 없이 시작된 일은 오래갈 수 없는 법이다.  지금 눈앞에 시작되는 일들이 얼마만큼 성장할지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 새로운 그릇에 새로운 대운을 담을지, 아니면 버려야 하는 냄새나는 인연에 담을지 말이다.  깨어있어라, 그래야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다가오는 운을 볼 수 있다.   
  • [GNN대구취재본부=정문현기자]어떤 사람이 좋으세요? 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요즘 유행하는 MBTI, EDISC와 같은 진단툴을 떠올리며 성격유형을 말할 것인가, 아니면 한 여름밤 꿈 같았던 첫사랑을 떠올려볼 것인가? 사람마다 어떤 생각으로 무슨 말을 할지 참 궁금하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눈이 아름다운 사람’이라 말하고 싶다.한 사람의 눈을 보면 모든 것이 녹아 있다. 과거의 힘들었던 시간들, 그 차가운 시련 속에서 묵묵히 이겨내온 역경이 보이고, 외로움이라는 터널을 지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의 눈동자, 그 안에는 겸손이 숨어져 있다. 그들은 말이 없다. 장황하거나 화려한 명함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다.나는 눈이 아름다운 사람을 가까이하고 싶다.최경규 행복학교장 [GNN=대구]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들은 오늘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어제를 반성으로 돌아보기도 하지만 내일만을 위해 살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성실하다. 삶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촌음(寸陰)을 아끼고 만나는 사람을 가리기도 한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만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곁에 두지 않으려 한다. 마치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이, 주위 환경의 중요성을 알고 삶의 변명이 많은 사람을 항상 경계한다.송나라 주희가 한 말, 일근천하 무난사 (一勤天下 無難事), 마침 이 말을 좋아하는 선배 두 명이 있다. 그들의 나이. 어느새 80이 되었다. 30년의 인연, 같이 늙어간다고 웃으며 막걸리 한잔을 건네는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바로 눈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비록 피부는 늙어가고, 근력은 예전 같지 않다지만, 그들의 눈은 아직도 건강하다. 한마디로 매력적이다.“성실한 사람에게는 절대 하늘이 어려운 숙제를 내리지 않는다”고 풀이하는 그들, 새로운 한 세기를 맞이하려는 그들의 하루일과를 들어보면 언제나 성실하다. 쉼도 있지만 게으르지 않다는 말이다. “선배님의 눈은 정말 아름다우세요” 라고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눈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늘 함께하세요, 그럼 당신도 그렇게 될 겁니다. 눈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삶은 매력적이에요, 하늘이 부를 날이 언제인지 모르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 아니, 후회없이 오늘을 살아야 해요, 배움으로 어제의 무지를 씻어내고, 멀어지는 인연에 미련을 두지 말고, 새로운 인연에 부담을 두지 마세요, 만남으로 인해, 나를 돌아보고 그들에게서 지혜를 구하는 거지요”눈이 아름다운 사람, 그들은 중도를 지키는 사람이다.무엇이라도 좋은 것을 보면 주위를 살피지 못하고 소유하려고만 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발걸음을 때로는 멈출 줄 아는 사람들이다. 비단 물건뿐 아니라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한 발자국 멀리서 관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 너무 뜨겁지 않게 너무 차갑지 않게 사람을 만난다. 사람을 통해 배운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많기에 삶의 철학이 그대로 적용되어 살아가는 듯하다.눈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들의 삶의 결은 당신과 어쩌면 비슷할 것이다. 굳이 소개를 받으려 새로운 모임에 나가지 않더라도 인연의 고리는 그들을 만나게 해 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을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슬기로운 자는 미래를 오늘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 아직 삶에 비가 내리고 있지만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지친 발걸음에 마지막 힘을 보탠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포기하는 순간, 미래도 사라진다는 것을 아는 그들은 오늘을 제대로 살아가는 눈이 아름다운 사람들일 것이다.어느새 따뜻한 봄을 지나고 있다. 내 마음에도 새들이 지저귀고 햇살이 비치고 있다. 바쁘게만 달리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에서 한순간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오늘 한번 가져보자, 그럴 수 있는 당신은 이미 눈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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