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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나라꽃 무궁화일제강점기에 한 교육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일본의 국화 “사쿠라는 잠시 만개했다가 금방 지지만” 우리의 국화인 “무궁화는 100여일 동안 꾸준히 피고 또 피는 우리 민족의 꽃이자 민족의 얼이다” 라고 하는 말을 엿들은 자가 일본 관헌에 알려 무궁화 탄압의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은 전국의 무궁화를 베어냈고, 심지어는 베어낸 무궁화를 쌓아놓고 불까지 지르면서 무궁화에 대한 악의적인 험담까지 쏟아냈다고 하니.. 참으로 악랄하고 야만적인 민족이 아닐 수 없다.   그 험담인 즉, 무궁화를 보면 눈병이 나는데 그 무궁화를 보고 3번 침을 뱉으면 낫는다. 이런 꽃은 쓰레기더미나 화장실 주변에 심어라, 진딧물이 많은 꽃이기 때문에 항상 지저분하니 모두 베어내고 그 자리에 사쿠라를 심어라.. 라고, "그랬던 일본에서  우리꽃 무궁화 축제가 열렸다. 사연인즉  2010년 작고한 故(고) 윤병도선생이 당시 17세의 나이로 일본에 건너가 무궁화를 심기 시작하였으며, 사이타마현 고마진자에 있는 자신의 산 한 모퉁이를 밀어서 만든 33만㎡(약 10만평) 부지에 50품종, 10만주를 식재하여 명실공히 세계최대 무궁화동산을 만들어 매년 7월 하순부터 10월 하순까지 입장료를 받으며, 그 축제기간이 끝나면 무료로 개방했다고 한다. 현재는 故(고) 윤병도선생의 미망인 이토 하쓰에씨와 차녀 하세가와 노부에씨가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차분히 계획을 세워 우리나라에서도 일본보다 더 아름답고 큰 규모의 무궁화동산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바야흐로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단순히 심고 가꾸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세계화를 위한 국가 브랜드로 키워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품종의 무궁화를 사회적 공감대와 외국인이 선호하는 품종으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무궁화의 기준형을 시급히 선정하여 국가 문화브랜드로 키워, 국내는 물론 세계로 보급 확대시켜 세계인이 사랑받는 무궁화가 되도록 우리 모두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무궁화는 신라 때부터 나라의 상징이었다 한다. 화심이 붉어서 일편단심이라 하여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했던 꽃 이였으며, 남태평양의 섬들에서 피는 무궁화는 상당히 큰 꽃이어서 외국 관광객이 올 때 목에 걸어주는 환영의 화환으로 사용하고 있어 세계 어디를 가던 무궁화를 볼 수 있는 글로벌 꽃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할 때다.  따라서 "(사)한국산림환경운동본부"에서는 "한국에 세계최대의 무궁화 자연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유관 기관 및 관련단체 등 다양하게 협의체를 구성하여 차제에 진해 벚꽃(사쿠라)축제가 아닌 “대한민국 무궁화 축제”를 주최하여 국민계몽 및 국가 브랜드로 키워 나갈 수 있도록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무궁화 테마파크, 수목원, 박물관 등과 관람공간 및 체험공간, 스토리텔링을 조성함으로 인하여 "무궁화라는 브랜드 가치"를 높여 한국하면 자연스럽게 무궁화 자연공원을 떠 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함은 물론, 관광자원으로서의 한 축도 담당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사)한국산림환경운동본부 중앙회한국미세만지환경예방협회 중앙회              회  장    이    재    희
  • 나라꽃 무궁화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꽃이며 한국의 국화다. 국화는 그 나라의 국민성을 상징하는 특성을 지니고 또한 그 나라의 역사에 특수한 연관성이 있는 경우와 중요한 전설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 우리 국화 무궁화도 법으로 정해진 나라의 꽃이다. 지금으로부터 80여년 전 우리나라에도 신문화가 들어옴에 따라 서양인들의 왕래가 빈번하게 되어 그 당시 선각자였던 윤치호씨 등의 발기로 양악대가 조직되어 애국가를 창작하고 애국가의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을 넣음으로 무궁화는 조선의 국화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남궁억선생이 한말 경북 칠곡부사로 있을 때 윤치호씨와 상의한 후에 국화로 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두 가지 기록 등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꽃으로 민족의 얼을 상징하게 되었고 “무궁화 강산”이라고 하면 우리나라를 미칭하는 뜻이 되었다.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는 나라를 상징하는 꽃뿐만 아니라“영원히 피고 또 피어 지지 않는 꽃”으로서 7월 초순에서 10월 하순까지 100여일을 매일 꽃을 피워 보통 한 그루에 2천∼3천여 송이가 피며, 옮겨 심거나 꺾꽂이를 해도 잘 자라고 공해에도 강한 특성을 지녀 민족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을 잘 나타내 준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함께해 온 무궁화는 조선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노래 말이 애국가에 삽입된 이후 더욱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무궁화 사랑은 일제강점기에도 계속 되어 1948년 8월 15일 나라꽃으로 자리 잡았다. 그 후 국기봉과 나라문장, 정부 각종문양, 열차, 인공위성 등에 무을 정부 보급품종으로 지정했다. 2002월드컵을 계기로 무궁화축제 개최 등으로 무궁화문양과 이름을 사용해 오고 있다. 88서울올림픽 때는 무궁화동산과 거리조성, 90년 9월 꽃잎 중앙에 붉은 꽃 심이 있는 단심계 홑꽃이 조성되어 2007년에는“8월 8일을 무궁화의 날을 정했다.”우리는 민족과 함께 영광과 수난을 같이해 온 무궁화를 사랑하고 잘 가꾸어 그 고귀한 정신을 길이 선양해야 한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무궁화동산을 늘려 가꾸고 보호해야 함에도 점점 그 수가 줄고 있는 실정이라 안타깝기 그지없다. 마침 산림청에서도 국유지에 예산을 투입하여 무궁화동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무궁화동산의 전국 확대 조성과 무궁화의 올바른 관리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지속적으로 협력하여 추진할 계획이라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산림청과 협약을 맺어 (사)한국산림환경운동본부 중앙회와 전국 16개 협의회가 주축이 되어 무궁화동산을 조성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학생들에게는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의 정신과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시민들에게는 힐링과 나들이 장소로 각광받을 수 있는 명소로 만든다면 시민의 행복은 물론이고 산림문화 또는 산림서비스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무궁화동산 조성은 단순한 나무심기가 아니라 국화로서 그 의미를 되살리고 나아가 산림청과 (사)한국산림환경운동본부와 협업으로 사회적 공헌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무궁화를 국가문화브랜드로 키우고 국가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문화적 요소로서“무궁화동산을 마련하여 관광자원화 함으로써 가족 ‧ 연인 ‧ 친구·관광객 등이 보다 아름답고 추억에 남는 무궁화동산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 한국산림환경운동본부 중앙회 한국미세먼지환경예방협회 중앙회             회  장   이     재     희
  • 아프리카 지도 1979년 3월 우리나라를 방문한바 있는 레오폴드 셍고르 대통령은 1960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아프리카의 신생독립국 세네갈을 이끌어온 지도자다. 파리의 소로본대학교 출신의 셍고르는 바깥에서는 시인으로 더 많이 알려진 아프리카의 지성인이기도 하다. 셍고르 대통령이 1980년 말로 대통령을 사임하고 당시 수상인 압두디 후프에게 대통령을 넘겨주고 은퇴하겠다고 해서 검은 대륙에 잔잔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지금까지 아프리카 신생독립국가 원수  중 자발적으로 자기가 물러난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셍고르의 하야 결정은 모든 사람이 좋게만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야당인 민주당 지도자 와드 변호사는 셍고르가 외체에 허덕이고 있고 자신의 지도자 자질이 한계점에 달했기 때문에, 스스로 정치를 포기하는것은 마치 침몰하는 배를 수수방관하는 것이라고 비난을 했다. 당시 아프리카에서는 51개의 독립국이 있었다. 이 중 48개국이 신생 독립국이였다. 또 25개국 이상이 한차례 쿠데타를 결험했고, 80년 12월 초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인 오트볼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라머지나 대통령이 물러나고 제르보 대톨령이 이끄는 혁명정부가 들어섯다. 후진국 일수록 유혈 쿠데타가 잣다는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뭏턴 당시 시인대통령 셍고르의 자진하야 결정은 검은 대륙의 어두운 정치에 처음으로 비친 한줄기의 희망으로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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